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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성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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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성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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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8]회 5권 6. 불타는 불민사(3)

  • 작성일 2010-12-06 오후 6:23:00 |
  • 조회 1681

자정이 훨씬 넘은 시각 이곳은 서경유수의 관저 빈청이었다. 서경 유수 이지미는 어쩐 일인지 북계에 출타중이라 보이지 않았다.

“마마, 이령 원주를 데리고 왔습니다.”

솔비가 안을 향하여 말을 하자 안에서 지청의 간드러진 목소리가 들려왔다.

“안으로 들라 하라.”

이령은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기분이 이상했지만 지금 와서 달리 방법이 없었다. 이곳에서 누가 자신을 구해주겠는가? 이미 지난번에 지청의 요구를 거절한 적이 있는지라 덜컥 두려웠다.

“소인 분부 받자와 대령했습니다.”

그렇게 말하고 고개를 드니 속옷 차림으로 누워 있는 지청을 차마 보지 못하고 다시 고개를 숙였다.

“뭐해 들어오지 않고. 오늘 내가 피로하니 와서 몸을 좀 주물러.”

이령은 차마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더러운 지청의 몸뚱이에 손 대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우리 집 충견이 되었으면 나한데 당연히 멍멍 짖어야지. 멍멍 잘도 짖어서 원주가 되었으면 오늘 나한데 잘 보이면 원주가 아니라 예부시랑 자리도 줄 수 있는데. 원래 이령 네놈의 목적이 출세 아니야. 그러니 빨리 와서 짖어보라고. 호호호.”

지청이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이령 앞으로 다가왔다. 그녀의 알몸이 그대로 드러나 있어 보기가 흉했다.

“마마께옵서는 폐하의 비이십니다. 어찌 옥체를 소인 같은 충견한데 맡기려 하십니까?”

“뭐 황제의 비라서 안 된다고. 호호호. 충견이 말 한번 재미있게 하는구나. 이왕 나온 김에 말 한번 해보자.”

“마마 저는 단지…….”

이령은 말을 잇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나 한데는 못하고 같은 황비인 윤초의 몸은 만져도 되는 거니. 나를 속이려고 하다니.”

이령은 숨이 콱 막혔다. 윤초 아씨와의 일을 지청이 어찌 안다는 말인가?

“마마 어찌 그런 말씀을. 소인은 윤초 마마한데 털끝만치도 부정한 마음을 먹은 적이 없습니다.”

“호호호. 부정한 마음을 먹은 적이 없다고. 네 놈이 윤초를 사랑하는 것 이미 다 알고 있느니라. 지엄하신 황비를 마음속에 두었다면 그 죄 도저히 용서받을 수 없다는 것을 너는 모르지는 않겠지?”

이령은 앞이 캄캄했다. 어찌하여 요부(妖婦) 지청이 알고 있다는 말인가? 그렇다고 해서 지청의 요구를 들어줄 수는 없었다. 천동이 하나로 만족 못해서 이령까지 성 노리개로 삼으려고 하는 지청의 마수에 걸려 빠져나올 방법이 없지 않는가?

“마마 소인이 비록 윤초 아씨를 마음에 두었지만 한 번도 불경한 죄를 범하지 않았습니다. 윤초 아씨께서 황궁으로 들어 온 이후로 그런 마음은 비웠습니다.”

“호호호. 사랑의 감정을 그렇게 쉽게 접는다고. 네 놈은 그래서 안화사에서 윤초의 초상화를 그렸다는 말이냐?”

이령은 알았다. 안화사에서 초상화를 그릴 때 누군가 엿보고 있었는데 그게 아마 세작일 줄이야.

“마마 그건…….”

“내가 눈 감아 줄 수도 있지. 내 말만 잘 들으면 네 놈이 윤초를 마음에 두었다는 것을 용서할 수 있어. 그렇게 할 수 있겠니?”

“마마 다른 것은 다 들어드릴 수 있사옵니다. 제가 어찌 마마를 …….”

“호호호. 괜찮다. 내 몸이 피곤하니 너의 손으로 잘 만져달란 말이야.”

지청이 손으로 이령의 가슴을 만지기 시작했다. 그녀의 가슴이 이령의 얼굴에 닿았다. 그녀의 숨결은 벌써 가쁜지 큰 가슴이 마구 울렁거렸다.

“마마, 아니 되옵니다. 제발 저를 보내주십시오?”

이령은 지청의 손을 완강하게 거부했다. 그 바람에 지청의 몸이 휘청거리면서 이령으로부터 떨어졌다.

“네 놈이 죽으려고 환장을 했구나. 그래 좋아. 네 놈이 윤초를 마음에 두고 있다고 내가 다 말해주마. 그러고도 네 놈이 살아날 수 있는지 두고 보자?”

“호호호. 언니가 그렇게 할 수 있을까?”

방에 나타난 것은 윤초였다. 이령은 윤초까지 나타나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솔직히 말해서 두렵기도 했지만 반가웠다. 13년 전 이령이 곤란할 때 지켜준 사람은 바로 윤초 아씨였다.

“윤초 네가 어떻게 여기에?”

지청도 부끄러움을 아는지 말이 떨렸다. 색녀가 그런 모습을 보이는 것은 어울리지 않았지만 지금 처한 상황은 아무리 언니라도 난처한 것이었다.

“언니, 내일 당장 폐하께 가서 이령공이 나를 사랑했다고 아니 나와 이령이 사랑하는 사이라고 고해바치라고. 나도 언니가 천동이란 놈과 황궁에서 사흘에 한번 꼴로 그 짓을 한다고 말할 테니. 과연 누구 죄가 클까? 솔직히 이령공과 나는 그저 마음을 주고받은 것밖에 없지. 그게 죄가 안 된다고 말은 하지 않겠어. 하지만 황비가 부하와 사흘에 한번 꼴로 욕정을 푼다고 하면 어떻게 될까?”

“야! 윤초 너 억지 부리지마. 증거 있어?”

“증거라고 했어. 그러면 좋아. 천동이란 놈을 불러서 대질을 시킬까? 궁녀들 불러서 볼기 치면 술술 말할 걸. 언니가 천동이와 놀아나면서 질러대는 신음소리가 대궐 담 너머까지 들리고 있다는 것을 알고나 있는지. 그래, 그렇게 해볼까?”

윤초가 생긋이 미소를 지었다. 어디 한번 해보자는 웃음이었다. 지청은 마구 펄펄 뛰더니 이내 꼬리를 내렸다.

“이령 네 이놈, 오늘은 이쯤에서 관두지만 네 놈은 내 몸을 잊지 못할 걸. 나의 풍만한 가슴을 느껴 보았을 테니. 네 놈도 솔직히 나를 가지고 싶지. 천동이 놈처럼 말이야. 너희들은 어차피 우리들의 성노리개일 뿐이지. 윤초 네 년도 잘 들어. 그래 황제가 너 한데 와서 놀아주던. 그 어린애가 뭘 안다고 너의 불타는 몸을 달래 주지. 여자한데 관심도 없는 숙맥이니 말이야. 호호호.”

정말 천하의 요부였다. 어찌 동생에게 이런 소리를 할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참 한심해. 어떻게 그런 생각만 머리에 들었는지. 모든 사람이 언니처럼 색만 밝히는 것은 아니란 걸 알아주면 좋겠어. 언니한데 간섭하지 않을게. 하지만 남자는 천동이 하나로만 만족하면 좋겠어. 여러 사람 폐인으로 만들지 말고.”

윤초는 지청이 많은 남자를 침실로 끌어들이는 것을 알았다.

“걱정하지 마! 난 하고 싶은 것은 하면서 살아.”

“호호호. 언니의 추잡한 짓거리를 황제가 모른다고 하면 오산이야. 지금은 아버지와 척장군 때문에 그냥 두고 보고 있겠지만 계속 좋은 마음으로 있지는 않을 거야. 이쯤에서 정신 차리지.”

“윤초! 기고만장이군. 네가 아끼는 저 놈이나 잘 간수하라고. 황제한데 들키면 너도 똑같으니 말이야. 호호호.”

이령은 윤초를 따라 나오면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솔직히 말해서 윤초 보기도 부끄럽지만 권력을 가진 자들에 대한 강한 증오심이 가슴 한 구석에서 우러나왔다.

“공자님 차나 한잔 하시렵니까?”

“너무 늦어서 아씨께 누가 될 테니 이만 물러갈까 합니다.”

“공자님이 두렵다면 어쩔 수 없지만 저는 두렵지 않습니다. 누가 될 것도 없고요.”

어디서 그런 당찬 생각이 나오는지 예전의 윤초가 아니었다. 이령은 그런 윤초를 보면서 가슴이 미어지는 것을 느꼈다.

“두렵지는 않습니다.”

“그러면 차라도 한 잔 하시지요. 지금 우리를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언니가 공자님을 유혹하려고 이 근처에 얼씬도 못하게 막았거든요. 사실 저도 공자님이 언니 방에 들어가는 것을 우연히 보았으니까요.”

벌써 축시를 넘었다. 이령은 윤초가 끓여주는 찻잔을 마주 놓고 생각에 잠겨 있었다.

“공자님과 저와의 인연은 어쩌면 운명이겠지요. 영원히 끊을 수 없는 인연이란 생각이 자꾸만 들어요, 오늘 밤은 더더욱 그렇습니다. 지난번 공자님이 황제를 구하려고 목숨을 걸고 제 방을 찾을 때나 오늘 또 함께 방에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그런 생각이 드네요.”

윤초는 그런 말을 하면서 이령을 빤히 바라보았다. 어떤 달콤한 말을 기다리는 것일까? 하지만 이령은 아씨의 마음을 알면서도 사랑한다는 말을 하기가 두려웠다. 그 말을 하면 오늘 밤 아씨께 죄를 범할 것 같은 느낌이었다. 도저히 아씨를 향한 마음을 억누를 수 없을 것 같았다.

“저와의 만남이 두렵나요. 금기된 사랑을 한 죄로 우리 두 사람 처형되어 북문밖에 효수되는 것이 그렇게도 두렵나요?”

‘두렵지 않습니다. 아씨의 모든 것을 갖고 싶습니다. 아씨를 저의 여자로 만들고 싶어요. 지금 이 순간 황제 폐하께 죄를 범한다고 할지라도 아씨의 마음과 육체를 차지하고 싶어요. 아씨를 안고 싶습니다.’

이렇게 말하고 싶었지만 이령은 결코 말할 수가 없었다. 하마터면 그렇게 말할 뻔한 것을 애써 참았다.

“저는 아씨가 죽는 것을 선택할 수는 없습니다. 아씨를 위해서 죽을 수는 있지만 아씨를 죽게 할 수는 없어요. 아씨를 사랑하지만 아씨와 함께 할 수는 없습니다.”

“저를 위해서 죽을 수는 있지만 저를 죽게 할 수는 없다고요. 그게 결국은 두렵다는 것이 아닌가요? 호호호.”

윤초가 공허하게 웃었다.

“아씨! 그건 아닌데…….”

“참 오늘 보니 공자님을 마음에 둔 여자가 많던데요. 예정민이라고 했나요. 그 분 공자님을 사랑하고 있던데요?”

윤초가 질투를 하고 있었다. 윤초 역시 여자였다. 황제의 비이면서도 그녀는 예정민에게 강한 질투의 마음을 갖고 있었다.

‘아씨, 저의 마음속에는 오직 한 여자 아씨뿐인 것을 어찌 모르십니까? 아씨만이 저의 전부인 것을요.’

“아씨, 저는 그 어떤 여자도 사랑하지 않습니다. 그냥 그림만 그리면서 늙어 죽어갈 것입니다.”

“그런가요. 어떤 여자는 저도 포함이 되는 것인가요?”

“아씨 그건, 그건…….”

이령은 대답을 못했다. 아씨만을 사랑하기에 어떤 여자도 사랑하지 않는 것을 왜 아씨는 모른단 말인가?

‘공자님 알아요. 공자님이 사랑하는 여자는 저란 것을요. 저 때문에 어떤 여자도 사랑하지 않는 것을. 하지만 저는 좋지만 공자님은 너무 억울하잖아요. 너무 억울해하지 말아요. 저 역시 이공만을 사랑하니까요. 설령 황제가 제 몸을 요구하면 죽을 수는 있어도 절대 몸을 줄 수 없어요. 비록 공자님에게도 줄 수는 없지만 죽을 때까지 지킬 것이니까? 너무 억울해하지 말아요.’

“이공, 제 나이 열 두 살쯤 되었을 때 저는 한 소년을 보게 되었지요. 소년은 대금을 연주하면서 저를 보고 있었는데 대금 소리가 어찌나 슬펐는지 좀처럼 잊을 수가 없었지요. 그러다 그 소년을 집에서도 보았고 안화사에서도 보게 되었지만 사실은 훨씬 전에 보았었지요. 그건 이공이 더 자세히 알고 계시겠지요.”

윤초가 지금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이령은 짐작을 할 수 없었다. 안화사보다 먼저 보았다니.

“소년은 오빠와 언니의 추적을 받고 언니가 쏜 화살을 맞았지요. 중상을 소년을 우연히도 제가 치료하게 되었는데 그땐 어두워서 잘 몰랐지만 후에야 알았지요. 예성강 절벽 노송에 기대어 슬프게 대금을 연주했던 소년이었지요.”

‘아! 그 사실을 알고 있었구나.’

이령은 품속을 더듬었다. 그 때 아씨가 상처를 싸매주었던 분홍 손수건이 그대로 있었다. 목숨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아씨의 흔적이었다.

“저는 예성강 연리지에 기댄 너무나도 아름다운 아씨의 모습에 영원히 빠지게 되었지만 아씨는 제가 사랑할 수 없는 분이었기에 마음에만 담아 두었지요. 더군다나 아씨는 저의 목숨을 구해준 생명의 은인이었기에 영원히 잊을 수가 없었지요.”

이령은 가슴에 담아 둔 말을 모두 꺼냈다. 결코 안을 수 없는 고귀한 여인이었지만 마음까지 담아둘 수는 없었다. 새벽이 다가오고 있었지만 이령은 울분을 토해내듯이 사랑의 감정을 표출하고 있었다.

“뭐라고요. 아직까지 제가 준 손수건을 간직하고 있다고요?”

십오 년이 훨씬 지났지만 그 때 상처를 싸매준 분홍 손수건을 보고 있는 윤초의 눈에서 진한 눈물이 흘러내렸다. 눈물을 흘리면서 윤초는 손수건을 만지고 있었다. 이령의 모든 사랑이 담긴 손수건을 소중하게 어루만지고 있었다.

“이 손수건은 저한데 소중한 물건 중의 하나입니다.”

“소중한 물건 중의 하나라고요. 다른 소중한 것은 또 뭔데요?”

윤초가 눈물을 손으로 훔치면서 이령을 빤히 쳐다보았다. 어떤 기대감이 어려 있었다.

“그건… 그건…….”

이령이 말을 못하고 머뭇거렸다. 휘종 앞에서 그린 예성강도였다. 윤초 아씨를 생각하면서 그린 위대한 그림이 이령에게 있어서 손수건 못지않은 소중한 물건이었다.

“그걸 제가 알면 안 되나요?”

이령은 당황스럽다. 영원히 가슴에만 묻어두고 싶었던 소중한 그림이었다. 빤히 쳐다보는 아씨의 아름다운 눈을 보면서 이령은 갈등하지 않을 수 없었지만 아씨의 소원이 너무나도 간절하기에 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씨, 열다섯 살 어린 소년의 가슴에 담아두었던 예성강과 연리지에 기댄 소녀의 아름다운 모습을 담은 그림입니다.”

“그림이라고요?”

윤초가 어떻게 예성강도를 알겠는가? 고려 황조의 어떤 사람도 알 수 없었던 천상의 그림이었다.

“아씨의 모습을 담았던 예성강도라는 그림이 아씨가 저에게 준 손수건과 함께 가장 고귀한 것이지요.”

윤초 아씨의 눈이 커졌다. 손수건과 더불어 어릴 적 연리지에 기댄 자신의 모습을 그려 소중하게 보관하고 있다니 하늘보다 고귀한 사랑을 어찌하리.

‘나는 이 사람에게 아픔만 주었는데. 나를 위해서 모든 것을 희생하는 이분을 위해 무엇을 해줄 수 있을까? 나 이외의 어떤 여자도 가슴에 담을 수 없는 이분인데. 나는 비록 황비라고 하지만 남의 여자가 되었는데. 하지만 이공 난 당신의 여자에요. 비록 황비지만 영원히 당신만을 사랑하는 여자랍니다.’

“이공이 저를 영원히 사랑하듯이 저 역시 이공만을 사랑하는 여자입니다. 이공을 향한 저의 사랑이 죄악일지라도 아니 그로 인해 제 사지가 갈기갈기 찢겨 죽을지라도 저는 당신만을 사랑합니다.”

윤초가 그 말을 하면서 무너지듯이 안겼다. 안아서는 안 되는 고귀한 옥체지만 거부하면 너무 슬퍼할까봐 그대로 있었다. 걱정이 많아서일까 제대로 먹지 못해서인지 아씨의 몸은 바람에 날아갈듯 가벼웠다.

‘아! 아씨를 갖고 싶어. 능지처사를 당할지라도 아씨를 갖고 싶어.’

윤초는 그런 이령의 마음을 아는지 무언가를 간절히 바라는 눈빛이었다.

‘안 돼. 아씨는 황비야. 아씨를 안는 것은 죄악이야. 아씨는 영원히 가슴에 안고 가야해.’

이령은 황급히 정신을 차리고 아씨 품에서 벗어났다. 허전했다. 다시는 안을 수 없는 고귀한 육체는 그렇게 이령의 품에서 벗어나 허공으로 사라졌다.

 

 

 

다음날 오후 네 사람은 자기가 그린 그림을 가지고 모여들었다. 이령은 졸리는 것을 참고 어제 그린 그림을 완성해서 청류장으로 갔다. 거기에는 이미 황제와 최사전 지석승 관습도감 제주인 김저도 함께 있었다.

“당대 최고의 화가 네 분이 그린 그림을 감상할 수 있다니 이런 영광이 또 어디 있겠소?”

관습도감 제주인 김저의 말에 황제와 최사전이 그림이 전시된 것으로 다가왔다. 맨 먼저 펼쳐진 것은 정미수의 그림이었다. 정미수는 있는 그대로의 청류장을 그렸다. 눈을 쌀로 보았더라도 쌀로 그리는 것이 아니라 눈으로 그려야 한다는 평소 정미수의 그림관이라면 당연하였다. 청류장 뒤로 보이는 패강의 옅은 푸른 물이 금방이라도 솟구쳐 오를 듯이 생생하게 그려져 있었다. 뿐만 아니라 네 명의 남녀가 청류장 우측에 있는 금수산을 바라보고 있는데 흰 구름 한 조각이 청류장 처마 끝에 걸려 있는 것이 특이했다. 푸른색을 많이 사용해서 인지 조금은 무겁게 다가왔지만 청류장과 패강 사이의 흰 여백을 적절하여 이용함으로써 무거운 분위기를 벗어나는 그림이었다. 사실적 화풍은 감정이 실리지 않을 때 가능했다. 그림에 인간의 감정이 배제된 그림이야말로 가장 아름다운 그림이라면 바로 정미수의 그림이 아니겠는가?

“이 그림은 청류장을 그대로 표현했지만 왜 구름이 끝에 걸려 있는지 이해되지 않는데. 무슨 이유가 있소?”

어린 황제였다. 이미 이령에게 그림 지도를 받아서인지 황제의 그림 보는 안목은 뛰어났다.

“폐하 처마 끝에 걸린 구름은 구름이 아니라 소인의 모습입니다. 소인이 청류장 끝을 부여잡고 매달려 있는 모습이지요. 그냥 그렇게 그리고 싶었습니다.”

자세히 보니 구름 안에 있는 여인이 하늘을 보면서 웃고 있었다. 정미수를 닮지는 않았지만 하늘을 보면서 뭔가를 빌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정미수라는 낙관이 박혀 있는『청류장을 안은 여인』이라는 그림이었다.

다음 그림은 예정민의 그림이었다. 예정민의 그림은 조금 특이했다. 청류장이 하늘에 덩실 걸려 있었고 정미수의 그림과 마찬가지로 뒤쪽으로 패강의 물줄기가 옅은 푸른색을 띠면서 흘러가고 있었는데 그 물줄기가 청류장으로 치솟고 있었고 물줄기 안에 반라의 여인이 누워 있는 그림이었다. 예정민 다운 그림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독특한 그림을 그리기로 알려졌는데 춘화를 닮은 그림을 그리다니. 한편 예정민의 그림을 본 이령은 충격을 받았다.

‘예정민 대조가 뭘 그렸지? 정미수의 그림과 너무 닮았어. 분명 같이 그리지 않았는데 닮은 그림을 그렸지’

예정민이나 정미수도 놀라고 있었다. 보지 않고 그렸는데 어떻게 같은 성격의 그림을 그렸는지 이해되지 않았다.

“저도 제목을 『여인을 담은 청류장』이라고 붙일까 합니다. 청류장의 모습은 색깔만 달랐지 정미수 화백과 같으니 기분이 묘합니다.”

두 명의 여 화백이 그린 그림은 우연히 같은 제목이 되다니 이령은 고개를 흔들었다. 고유방 역시 고개를 흔들고 있었다.

고유방과 이령이 동시에 그림을 황제 앞에서 펼쳤다.

“이것도 같은 그림이잖아?”

동시에 터져 나온 말에 좌중은 아연 긴장했다. 고유방과 이령은 패강을 그대로 그려 놓았다. 패강을 보는 각도에 따라 조금 달랐고 색깔의 명암이 달랐을 뿐 대동소이했다.

‘아! 유방의 그림이야말로 혼이 실린 사실적인 그림이야. 색깔이 화려하지만 훨씬 더 아름답게 그렸어.’

이령이 탄복하고 있을 때 고유방은 절망하고 있었다.

‘나의 그림은 아직은 멀었어. 형의 그림이야말로 천상의 그림이야. 어떻게 패강을 저렇게 표현할 수 있어. 보통 사람들이 보면 내 그림이 화려해서 좋게 보일 수 있지만 형은 사실 그대로 나타내었어. 패강이 살아서 꿈틀거리고 있어. 강물이 주위 환경과 은은한 조화를 이루면서 수천 년을 흐른 아름다움이 화폭 속에 담겨 있어서 마치 내 눈이 멀어버릴 것 같아. 화려한 색을 사용하지 않으면서 극치의 미를 보여주는 형의 그림이야말로 천상의 그림이 아닐까? 형이야말로 진정한 실경산수화의 대가요 천재 화가라고.’

고유방이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정미수와 예정민 역시 놀라고 있었다.

‘아! 예성강도를 보지는 못했지만 송나라 휘종이 천상의 그림이라고 극찬한 이유를 알겠어. 처음 보면 그냥 평범하지만 보면 볼수록 아름다운 그림이야. 특히 그냥 세 가지 정도의 색을 사용하고도 저렇게 단아한 그림을 그려내다니.’

예정민이 그런 생각을 할 때 정미수 역시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하하하. 두 분의 그림은 정말 대단해. 그림을 통해 패강의 진정한 아름다움이 그대로 드러나 있어?”

“폐하, 소인의 그림은 고유방 화백에 비하면 졸작입니다. 고화백의 그림이야말로 색의 조화가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알 게 해준 수작입니다.”

이령이 그렇게 말했지만 고유방은 그냥 웃고만 있었다. 아니 유방은 자책하고 있었다. 이령의 그림을 자신의 능력으로 평을 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오늘 두 분의 그림에 짐이 제목을 붙이겠소. 그림의 문외한인 짐이 자격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너무 아름다운 그림이라서 그리하고 싶어요. 고화백이 그린 그림은 패강의 아름다운 모습을 화려한 색체로 그대로 옮겨 놓았으므로 『패강도(浿江圖)』라하고 이화백의 그림은 아름다운 패강을 단아한 색으로 꿈을 꾸듯 그렸기에『몽유패강도(夢遊浿江圖)』라 하면 어떨까요?”

고려사에 기리 남을 국보급 그림인 고유방의 패강도와 이령의 몽유패강도가 이렇게 완성되고 있었다.

댓글 (1)

너은들 2010-12-06 오후 6:24:00 답글
패강도와 몽유패강도는 고유방과 이령이 패강을 보면서 그린 그림은 실경산수화의 대표작으로 볼 수 있다. 같은 대상을 두고 두 사람이 그린 그림이라 대조적이다. 고유방의 그림은 화려하고 이령의 그림은 단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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